▲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노동법률)
정년이 지나 재고용된 촉탁직 근로자에게도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같은 업무로 재고용됐다면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강재원)는 최근 공동주택관리회사 A 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고용된 촉탁직 근로자 갱신기대권 '인정'
근로자 B 씨는 A 사에 기간제 근로자로 입사해 6개월~1년 단위로 8번 기간제 계약을 갱신했다. 회사는 B 씨의 정년이 지나자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한 뒤 촉탁직으로 재고용했다.
이후 회사는 인사평가를 실시해 B 씨가 갱신 기준 점수인 70점에 미달했다며 B 씨에게 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B 씨는 자신에게 갱신기대권이 있어 계약 만료 통보가 부당해고라며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충북지노위와 중앙노동위원회는 B 씨의 부당해고 주장을 인정했다.
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법원은 B 씨에게 갱신기대권이 있다고 봤다. 회사는 B 씨를 촉탁직으로 재고용했을 당시 임금이 상승해 신규채용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B 씨에게 갱신기대권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재고용 계약에서 월급이 28만 원 상승했지만 기존 기간제 계약에서도 임금이 상승한 경우가 있었다"며 "임금 상승만으로 재고용 계약을 신규채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B 씨가 제출한 사직서에 자발적인 사직 의사가 담기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B 씨가 제출한 사직서는 진정한 사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년 도달 후 촉탁직으로 재고용하기 위한 절차상 이루어진 것"이라며 "B 씨가 사직서를 제출한 뒤 재고용 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신규채용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존 기간제 계약과 재고용 계약의 성질이 사실상 동일하다면 B 씨에게는 갱신기대권이 존재한다"며 "갱신기대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계약 만료를 통보한 것은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갱신 거절에도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봤다. 법원은 회사가 사전에 취업규칙에 고지된 인사평가 방식을 사용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취업규칙이 재고용 근로자와 시용 근로자의 평가 방식을 구분하고 있지만, A 사는 시용 근로자 평가 방식으로 B 씨를 평가했다"며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방법이 사용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법원은 회사가 앞서 기간제 계약을 갱신할 때는 인사평가를 실시하지 않았던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B 씨가 정년 전 기간제 근로자일 때에는 갱신을 위한 별도의 인사평가를 실시하지 않았다"며 "같은 업무로 재고용된 B 씨의 입장에서는 계약이 동일하게 갱신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B 씨에게 계약이 갱신될 것이라는 신뢰관계가 형성된 상황에서 합리적이지 않은 인사평가를 이유로 한 갱신 거절은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갱신기대권 부정하려면 업무ㆍ조건 등 '실질적 단절' 있어야
촉탁직 재고용 시 갱신기대권이 문제되지 않으려면 기존과 같은 업무를 하지 않는 등 '실질적인 근로관계 단절'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처럼 기존과 같은 업무에 재고용하는 경우 갱신기대권이 인정될 확률이 높다.
강수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사직서를 받고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더라도 업무 내용, 책임, 근로조건이 기존과 유사하다면 갱신기대권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실질적인 근로관계 단절이 인정돼야 갱신기대권이 부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직서를 제출받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할 때 기존 업무와 명확한 차이가 있는 업무를 부여하고 근로조건도 바뀔 필요가 있다"며 "기존 기간제 계약과 재고용 계약이 실질적으로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고용 근로자에게 갱신기대권이 인정됐다면 합리적인 이유 없이 계약 갱신을 거부할 수 없다. 인사평가를 근거로 계약 갱신을 거부하려면 평가 방법과 기준이 사전에 근로자에게 명확히 고지돼야 한다.
강 변호사는 "인사평가를 기준으로 계약 갱신을 거부하려면 평가 방법과 기준이 근로자에게 사전에 명확히 고지돼야 한다"며 "고지된 평가 방법에 따라 평가가 실시됐다는 점에 대한 객관적인 증빙자료도 구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재헌 기자 jh59@elabor.co.kr



